웃음주는 하회탈

2014.11.19 11:47

김고매 조회 수:8685

한국인 웃음 찾아 하회탈 만드는 구암 김동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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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명예기자 김영기

한국인의 웃음을 대표하는 하회탈.
안동에 가면 하회탈도 볼 수 있지만, 하회탈을 쏙 빼닮은 하회탈 장인 구암 김동표 선생을 만날 수 있다.
구암은 질박한 하회탈의 생생한 표정들을 만들어내는데 평생을 바쳐온 사람. 현재 하회탈 박물관의 관장을 맡고 있다.


“글쎄요. 탈과 인연을 맺어서 그런지, 하회탈을 만들다 닮게 된 건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사람들이 절더러 탈을 닮았다고 하더군요. 허허허~.” 
탈 박물관은 1995년에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탈 전문 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해학과 풍자를 담은 한국인의 표정을 형상화한 한국 탈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탈 6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 국보로 지정된 하회탈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모든 탈들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가 있다. 구암이 사비를 털어 설립한 뜻 깊은 곳이기도 하다.


구암은 제1회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서 ‘세계 탈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우리나라의 탈문화를 세계 속으로 보급하고 있다. 특히 그가 만든 하회탈은 미국 백악관 박물관의 요청으로 기증됐고 미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개최되는 한국 탈 전시회에 하회탈을 전시하기도 했다. 또한 1998년 대만 묘율(Miaoli)국제가면예술제를 비롯해 국내외 가면전시회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1999년 봄,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의 안동 하회마을 방문 땐 자신이 직접 만든 하회탈을 여왕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구암은 20살 목공예를 배우며 하회탈에 손을 댔다. 당시 탈이 뭔지 몰랐지만 6개월~1년 동안 습작에 전념했다고 한다. 이후 군에서 제대하면서 탈이라는 것을 조금 알게 돼 다시 시작했다고.
구암은 어릴 때부터 나무로 만들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쓰시던 부엌칼로 마루 전에 조각을 해놓는 바람에 야단맞기가 일쑤였다. 그는 군 입대 전과 제대 후 1년 동안 혼자 연습하다가 신영창 선생, 김창범 선생을 만나 각 1년 정도

사사를 받고 개인공방을 만들어 습작에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광고를 보고 무작정 상경해 목공예학원에 등록했다. 


 

시간이 흘러 서울에서 개인공방을 마련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중동근로자로 취직해 1년 동안 돈을 모으고, 1978년 천호동에 개인공방을 만들었다.
그러던 중 이웃에 사는 사람이 하회탈이 인쇄된 우표를 가지고 와 만들어 달라했다. 나무로 만드는 것에 자신 있던 선생은 쉽게 대답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하회탈을 보고 실물을 참고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파는 기념품도 봤지만 오리지널과 너무 차이가 많았다. 그때 불현듯 자신의 고향이 안동이란 사실을 깨닫은 구암은 더 이상 생계유지가 되지 않는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1980년 안동으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마을회관을 빌려 작업했는데, 하회마을 면장님과 어른들이 찾아와 하회탈은 하회마을서 만들어야 한다며 공방자리를 마련해줬다. 그때 그 자리에는 지금 탈 박물관이 세워졌다. 그는 ‘부용탈방’이란 작업실을 만들어 탈을 제작했다. 부용탈방은 하회마을 앞에 있는‘부용대’라는 언덕에서 따온 이름. 현재 그의 손을 거쳐 간 탈만 해도 5천개가 넘는다.


하회탈의 종류는 모두 12개인데 그 중 총각탈, 떡달이탈, 별채탈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조사에 의하면 총각탈은 절세 미남형이고 별채탈은 아주 표독스럽게 생겼다고 한다. 현재는 양반탈, 선비탈, 중탈, 백정탈, 초랭이, 이매, 부네, 할미, 각시 등 9개 탈과 주지라는 동물 2마리 탈 모두 11점이 하회탈 놀이에 사용되고 있다. 이밖에 하회마을 옆 병산이라는 곳에서 2개의 탈이 발굴돼 국보로 지정되면서 모두 13개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선생은 1983년부터 하회별신굿 탈놀이 이수자로 등록된 후 자신이 직접 각시 역할을 맡아 10년째 공연장을 누비고 있다. 우연히 각시 역을 맡은 배우가 못나오는 바람에 땜방으로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이어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계승자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생계를 보장하는 직업으론 불가능합니다. 10명 정도가 배웠지만 지금 1명만 억지로 꾸려가고 있고 나머지 9명은 직업을 바꿨죠. 그래서 누가 배우러 오면 젊은 시절에 시간낭비하지 말라며 권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앞으로 얼마든지 일할 것이 많다는 것은 살아있으면서 즐거운 일이고, 박물관의 규모를 갖춰 실속 있게 다듬어가는 것이 저의 꿈이랍니다.”라며 탈에 대한 애정을 내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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